HCI로 흘러들어오기까지

진로 드리프트!

얼마 전 중간고사도 다 끝나고 중요한 인턴 지원도 마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 HCI를 공부하고자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게 웃기고 신기해서 글로 기록해둔다.

1. Objective Analysis

일 년 반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당연하게도 대기과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줄 알았다. 당시 3학년이지만 치기 어리게 신청한 해양학과 대학원 과목인 Objective Analysis에서는 U of Washington의 대기과학과 교재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고작 공학수학과 통계학 정도의 수학 지식을 사용해서 저자가 도출해내는 직관들은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줄곧 타성에 젖어있었던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공부에 질려 산학장학생으로 삼성전자에 취업하려던 계획을 때려치우고 대기과 대학원으로 유학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U of Washington에 가서 ATM 522 수업에서 Objective Analysis를 한 번 더 배우고 싶었고, 이런 거라면 평생 공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대학인생의 전환점 두 번 모두 U of Washington과 관련되어 있다. 이쯤 되니 운명이라고 믿고싶다🤪

2. 교환학생 취소

그런데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에 교환학생 Nomination을 취소해달라고 메일을 보냈고, 예보분석응용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기로 했다. 한 학기 정도는 꾸역꾸역 일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도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은 그냥 학교를 계속해서 다니기로 했고, 대신 조금 쉬엄쉬엄 학기를 보내고 싶어서 경영정보론이랑 마케팅관리를 수강 신청했다. 그런데 이게 뜻밖의 예상치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HCI에 빠져버렸다!🥰

3. 계량마케팅과 경영정보론

전공이 3개인 대학생의 최대 비애는 수강신청 시즌에 느낄 수 있다. 다른 많은 경영 주전공생들과 복수전공생들은 수십 개의 강의 평을 읽고 심사숙고해서 교수님을 고르지만, 애매한 2시간짜리 실습수업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데다가 윗공대에서 경영대까지 패러글라이딩하지 않는 이상 연강은 불가능한 물리적 조건까지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맞는 수업을 신청하는 것밖에 없었다. 마케팅관리와 경영정보론 둘 다 암기량으로 악명 높은 수업인지라 시간이 맞는 수업을 신청 후 제발 계량 분야 교수님들이 담당 교수님으로 배정되기를 기도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계량 마케팅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과 기존에 IT 경영을 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배정되었고, 그렇게 무난하게 학기를 시작했다.

당시 경영정보론 수업에서 닷컴 버블에서 살아남은 대기업을 주제로 보고서를 써오는 과제가 나왔다. 아리랑 TV 수준의 영어 실력을 뽐내는 경영대생들과 정정당당하게 영어 보고서로 경쟁할 자신은 없었고, 최대한 남들이 하지 않을 것 같은 기업을 고르다 보니 도달한 게 아마존이었다. 매달 연구실 예산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AWS에 대한 궁금증도 사실 한몫 했다. 누가 자연대생 아니랄까 봐 사실 경영 전략에 관한 부분이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고, 내 시선을 끈 부분은 아마존의 엄청난 Customer obsession의 부산물이었던 A/B Testing이었다. 보고서의 논지에서는 한참 벗어난 키워드였지만 그냥 재밌다고 느껴져서 3~4시간 정도 관련 자료를 찾아봤던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 이후로 기억 저편에 있었던 HCI라는 키워드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에 한층 HCI에 대한 인식을 강화한 수업은 마케팅관리였다. 총 12개의 대주제가 있었는데 사실 앞 11개의 주제는 크게 재밌지는 않았다. 흔히들 학문으로써의 마케팅의 꽃으로 STP, 4P, BM Canvas, BCG Matrix 같은 툴들을 꼽고는 하지만 나한테는 별로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합리의 소산처럼 보이는 것들을 굳이 책으로 만들어서 배워야 하나 약간 의문이 들 정도? 아무튼, 그런데도 마케팅관리를 내가 재밌는 과목으로 판단한 이유는 마지막 강의 덕분이었다. 책에는 없는 최근 디지털 계량 마케팅에 더해서 교수님의 연구 주제들을 짤막짤막하게 소개해주셨는데, 상품의 Involvement에 따라서 적합한 광고의 modality가 다른 것을 밝혀낸 연구가 몹시 흥미로웠다. 꽤 자주 돈이 사람에 우선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영학의 시각이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서 관련 연구들을 찾아봤다. 찾다 보니 타고 흘러 HCI 논문들까지 닿게 됐고, 나도 이런 걸 연구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d3로 방점 찍기

어쨌든 유달리 그 학기에 수강한 경영 과목들에서 계속해서 HCI 분야의 연구를 빌린 사례들이 많았고, 그래서 HCI가 꽤 자주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HCI를 공부해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계기는 d3였다. 다시 대기과 인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학기 말 나는 300GB가 넘는 모델링 결과물을 도대체 어떻게 발표해야 할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내 결과물은 3차원 공간상에서의 대기를 1분 단위로 72시간을 모사한 결과였고, 분 단위의 구름의 생성과 소멸이 중요한 연구였기 때문에 통계량을 이용하거나 단면을 이용해서 차원을 낮춘 결과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전까지 애용해오던 matplotlibseaborn도 더이상은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gif나 동영상으로 나타내자니 내가 봐도 데이터의 전달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Contour를 덮어씌우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때 또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계속 우연이 이어지니 조금 웃기고 신빙성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원래 사는 게 그런 거니까…. 아무튼, 친한 언니랑 카페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당시 Bioscience 쪽 유학을 위해서 연구실을 알아보고 있던 언니가 멋있지 않느냐고 사이트를 하나 보여줬다. 세상에…그래프가 움직였다!😳 점 두 개를 클릭하면 색이 변하면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고, 당연히 다른 각도에서 노드들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한 달 내내 찾아 헤맨 형태의 데이터 시각화였다. 개발자 도구를 켜서 코드를 뜯어봤고, 그게 d3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시 생각해보면 대기 데이터 시각화에 d3를 사용하려 한 시도가 분야 Convention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기억이 나는 모든 순간 그래프를 좋아했던 내가 d3에 빠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Jeffrey Heer의 사이트를 구경하며 나도 그런 것(?)들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HCI로 진로를 급선회했다.

관심사가 계속 넓어진다… 이를 어쩐담…

다소 갑작스럽지만 어쨌든 그렇게 HCI로 진로를 정하게 됐고, 지금은 관련 연구실로 옮겨 연구 인턴을 하고 있다. 재밌고 즐겁기는 한데… 문제는 관심사가 끝도 없이 넓어지고 있다는 정도? 물론 여전히 CMU DIGJeffrey Heer 연구실 연구들이 가장 흥미롭기는 하지만 최근들어 CSCWHumans-in-the-loop도 흥미롭다고 느끼고 있고, 연구실에서 구경(?)하다 보니 conversational agent 연구도 재밌어 보인다. 뭐 아직 시간이 많으니 차차 좁히거나 연관점을 이어나가면 될 문제라고 본다. 애초에 이것저것 찔러보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대기과학에서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테니🥲 예상치도 못한 진로에 도달하기까지 내가 그래프 좋아! 를 외치면 버섯 좋아! 랑 정수론 좋아! 를 같이 외쳐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오늘의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GRAPH J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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